한국의 능력주의가 만든 폐해는 필설로 형언하기 어렵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만이 고위관직을 차지하고, 그 자리를 이용해서 온갖 못된 짓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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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능력우선주의가 뿌리내리게 된 계기를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에서 찾으려는 의견이 있다. 한국의 각종 고시제도가 과거제도처럼 시험성적을 중심으로 편제된 것은 사실이다. 인성을 가리기보다 문제를 얼마나 잘 풀었는지가 중요하다. 1등에서 꼴등까지 일렬로 쭉 세워놓는 것을 속 시원한 사회체계라고 보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우리의 교육제도는 오로지 시험기계를 양산하는 시스템으로 정착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후순위에 있다.
한국에서 능력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된 배경에는 ‘차등 분배’를 공정하다고 보는 인식이 폭넓게 깔려 있다. 자기 삶은 자기가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는 다소 각박한 생각이 능력주의와 불평등을 사회도덕으로 우뚝 세워놓았다. 능력 있는 자가 능력만큼 보상 받는 것을 정당하게 여기는 거다. 밀림의 생존방식인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사회체계의 근본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이런 사회에서 능력 없는 사람들이 기댈 언덕은 없다. 능력 없는 사람들은 사회적 보상체계의 밑바닥에서 허덕거려야 한다. 그것이 당연한 사회질서로 수용되었다. 그러다보니 너 나 할 것 없이 시험성적에 매달려 살 수밖에 없다.
온 나라가 1등을 향해 내달리는 판국이면 협력과 배려는 사치가 된다. 1등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라고 권면한다. 불평등이야말로 사회성장과 유지의 바른 동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시험성적을 바탕으로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은 그 달콤한 맛을 만끽하기 위해 강력한 차별화를 도입했다. 견고한 진입장벽을 세우고, 소득의 불평등을 극대화하며, 법률적 권한을 거의 무제한으로 확대한다. 정책이나 제도라는 이름을 빌려서 차등화한 시스템을 공정하다고 강변한다. 이러는 사이 도덕성은 길바닥에 버려졌다. 오로지 경쟁만을 신성한 것이라고 합창한다. 승자독식사회를 찬양하는 것이다.
승자독식사회는 약탈적 사회체계를 일반화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심리적 일탈양상도 흔하게 목격할 수 있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을 수단으로 여기는 패륜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고도 당당하다. 그것도 자신의 능력이라고 자랑한다. 일탈과 패륜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무시와 조롱으로 일관한다.
물론 능력주의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능력주의가 사회적 선발기능으로 공정하게 작동한다면 사회의 역동성은 배가된다. 그러나 능력주의가 차단의 벽을 높이 세우고 차별을 정당화하고 혼자 잘났다고 주장하는 시초로 작용한다면, 이는 마땅히 버려야 할 사회적 폐습일 뿐이다.
손정임 기자 sjo54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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