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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도적떼를 9,000명이나 거느렸다는 ‘도척’의 부하가 도둑질에도 도(道)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도척이 ‘도둑질 할 물건이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성(聖)이고, 도둑질하러 앞장 서는 것이 용(勇)이고, 도둑질 후에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義)이고, 도둑질이 가능한 지의 여부를 아는 것이 지(知)이고, 분배를 공정하게 하는 것이 인(仁)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고 큰 도둑이 된 자는 없다’고 대답했다.
도적떼의 우두머리다운 말이라고 하겠다. 물론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도척의 행태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도적은 도적인 것이고, 그가 편히 죽었다고 해서 그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앞의 이야기는 장자의 ‘거협’ 편에 나온다. 그럴싸해 보이는 도척의 말은 ‘말만 많고 행실은 허망한 형편이거나 이치만 앞세운 고약한 규범으로 백성을 옭아매는 지도층’에게 일침을 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자를 비롯한 유학자들의 복잡다단한 겉치레를 통박하려는 의도가 담긴 말이다.
하지만 도척이 공자보다 훨씬 이전 시대의 사람인 점을 감안해 보면, 장자의 제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실증하려는 의도에서 꾸며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아무튼 지나치게 인의(仁義)를 강조하는 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본 것이다.
세상이 어지럽고 균형이 어그러지면 말들이 많아지는 법이다. 이런 때면 어김없이 신박한 이론을 앞세운 잘난 사람들이 등장한다. 공자를 비롯한 소위 현인(賢人)들이 가르친 고상한 예법과 임금이나 백성의 도리에 관한 지혜들도 난세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묵자도 그렇고, 순자도 다르지 않다.
장자와 제자들은 이런 따위의 논리들을 마땅치 않게 여겼다. 말만 현란하게 늘어놓는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성인들의 높고 귀한 말들을 도적떼의 우두머리가 인용하는 현실을 개탄해마지 않은 것이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품고 있는 마음이고, 억지가 없는 자연스런 삶이라고 역설했다.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장자 ‘변무’편에는 오리의 다리가 학의 다리보다 짧다고 해서 억지로 잡아 늘이면 오리의 다리는 제구실을 못하게 되고, 반대로 학의 다리가 길다고 해서 그 다리를 오리의 다리와 같게 잘라버리면 학은 걷지도 못하고 날지도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억지로 짜 맞춘 말이나 행동의 적폐가 얼마나 위험하고 난폭한지를 예증하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런 억지가 지금도 횡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허한 말로 세상을 움직여보려는 일이 빈번한 요즘이다. 잘 짖는다고 좋은 개가 아니라는 속담이 있다. 법과 원칙을 애써 강조하지만 저잣거리의 웃음꺼리로 전락한 몇 사람의 행태가 생각난다.
손정임 기자 sjo54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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