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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자공(子貢)이 스승 공자(孔子)에게 “정치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그것은 경제(足食), 군사(足兵), 그리고 백성들의 신뢰(民信之)다”라고 했다. 그러자 자공이 다시 물었다. “만약 이 세 가지 중에서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한다면, 어떤 순서대로 포기해야 합니까?” 공자가 다시 대답했다. “첫째로 군사를, 다음으로 식량을 버려야 한다.”
공자는 그 말끝에 이렇게 강조했다. “예로부터 백성이 죽는 일을 겪지 않는 나라가 없었지만,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논어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이 대목은 유명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사자성어의 유래다. 정치에 있어서 백성들의 신뢰가 경제나 국방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 악성 바이러스처럼 느껴져
확산일로의 ‘최순실 게이트’ 쓰나미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곤경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더니 정말로 박 대통령의 추락은 끝을 예단하기가 어려울 만큼 무한 처참하다. 국민들을 온통 카오스(Chaos 혼돈)에 빠트린 ‘최순실 게이트’는 도무지 어디까지 깊이 파고들었는지 알 수 없는 악성 바이러스처럼 느껴질 정도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긴 세월 사사로이 가까이 지낸 작은 친분 안에서 누군가에게 엄중한 국정(國政)을 우겨넣고 주무르도록 방치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소화가 될 수 없는 ‘농단(壟斷)’임에 틀림없다. 박근혜를 반대했던 사람들은 ‘거 봐라’ 하면서 도끼자루를 들고 나섰고, 지지자들은 한 마디로 정신(精神) 줄마저 가누기 힘든 신세다. 해괴하기 짝이 없는 도깨비판이 폭로된 셈이다.
박 대통령 두 번째 사과, 또 다른 시빗거리 돼
두 번째로 ‘사과(謝過)’의 연단에 오른 박 대통령의 언급은 번지는 불길을 아주 잡는데 실패했다. 사과문 중 “국가경제와 국민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한 대목이 또 하나의 시빗거리를 낳고 있다.
‘국가 경제와 국민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이라는 대목은 국민들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미르․K스포츠재단 건립이 자신의 작품(?)임을 인정하는 부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라는 여전한 유체이탈화법은 최순실의 비리가 자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서술하는 궤변으로 들린다.
인터넷 패러디, 지도자 권위 짓밟는 민심 대변
박 대통령 담화 직후부터 인터넷에 쏟아지기 시작한 ‘내가 이러려고……’ 패러디들은 땅바닥에 떨어진 지도자의 권위마저 짓밟고 있는 민심을 대변한다. ‘이러려고 나라 팔아먹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이완용-’ 에서부터 ‘이러려고 쑥·마늘 먹고 사람 되려고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단군신화’, ……‘내가 이러려고 국민했나’에 이르기까지 한도 끝도 없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했던 김병준을 국무총리로 지명한 박 대통령의 회심의 일수(一手)도 꼬일 대로 꼬이고 있다.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오판한 박 대통령의 불통(不通) 인사가 곧바르고 유능한 인재 하나를 아주 등신(等神) 만들게 생겼다. 필자가 아는 한 김병준은 직관력이 강하고 명석하고 사심 없는 괜찮은 인물이다.
야권, ‘하야하라’고 못 외치는 속사정 따로 있어
아무렇거나, 박 대통령의 처지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놓였다. 정치권 안팎에서 탈당요구가 이어지고,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쪼개지기 일보직전이다. 흔들린 민심이 돌아올 가망은 좀처럼 근거를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야당은 여당 못지않게 딜레마에 빠진 듯하다. 민심을 싸잡아 외치자면 ‘하야하라’고 외치는 게 정상일 듯도 한데, 연일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왜 그럴까. ‘2선 후퇴’ 어쩌고 하는 아리송한 주장만 거듭하고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전열정비가 제대로 안 된 그들에게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하도록 돼있는 헌법 제 68조 2항이 버거운 덫일 것이다. 여차하면 임기를 마치고 갓 돌아온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기회를 헌납할 여지도 있다는 계산이 그들의 요령부득(要領不得) 근거일지 모른다.
박 대통령의 계산된 ‘하야’ 카드 가장 무서울 수도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民無信不立)’는 공자의 말을 대입하자면 현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권위를 회복할 희망은 거의 없다. 고비 고비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정신을 앞세워 정치지평을 열어온 한 지도자가 망측한 자가당착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에게는 마지막 한 수가 있을 수 있다.
…친박이 옥쇄하듯 모두 물러앉는다. 국민들의 ‘정치혐오감’이 증폭되는 사이에, 미더운 정치선진화 설계도를 들고 보수정당을 갈아엎어 재건축한다. 신당 창당에 공감하는 인재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반기문 사무총장이 돌아와 ‘정치혁신’의 깃발을 들자마자 선거가 치러진다. …만약 그런 플랜이 있다면, 야당은 박 대통령의 계산된 ‘하야’ 카드가 가장 무섭지 않을까?
함량미달 대통령 또 뽑게 될 위험성 높아져
대통령의 기습적인 ‘하야’ 작전이 초래할 비극은 더 있다. 조기 대선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잠룡들을 검증해야 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앗아간다. 결국 또 한 번 부실 검증과정을 거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얘기다. ‘별이건 달이건 다 따주겠다’는 식의 포퓰리즘은 하늘을 찌를 것이고, 나라곳간이야 거덜이 나건 말건 ‘무한복지’ 공약깃발이 즐비하게 될 것이다.
대선에 나갈 후보도, 후보를 내고 선거전을 치러야 할 정당들도 아직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심각한 것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도 아무런 채비도 돼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두터운 중도의 표심을 핥아내려는 ‘사술(詐術)’들이 난무할 게 빤한 형편에, 우리가 또다시 함량미달의 시대착오적인 역량의 대통령을 뽑게 될 확률이 흠씬 높아진다는 말이다.
머슴들의 천박한 ‘갑질놀이’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돼
어쨌거나, 대통령의 권위가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지고 정치권에는 권력 틀어쥐기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한 노림수, 꼼수들이 난무하는 정치풍토 속에서 민초들의 삶은 한없이 피폐하다. ‘최순실 게이트’의 난맥상은 이 나라 민주주의가 얼마나 기형적인가를 증명한다. ‘민주주의’라면서도 전혀 ‘민주적’이 아닌 기형 정치시스템이 천박한 알몸을 드러난 것이다.
정치가 사술이 돼버린 이상한 나라에서 우리가 이렇게 비루한 삶을 지속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인들은 철저하게 ‘머슴’이어야 한다. 선거만 지나가면 섬겨야 할 주인의 상투 위에 올라타고 되지도 않는 갑질놀이에 여념이 없는 머슴들을 그냥 둘 수는 없다. 아무리 ‘머슴들’이 그렇다고 주인이 폐농(廢農)을 선언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유권자들이 정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될, 절체절명의 위기가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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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그 지독한 수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