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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난정’ 또는 ‘최순실’
조선 13대 왕인 명종(明宗) 대에 미천한 기생 신분에서 정경부인(貞敬夫人)이라는 귀부인까지 올라간 불세출의 여인이 있었다. 유명한 정난정(鄭蘭貞)이라는 인물이다. 부총관을 지낸 정윤겸(鄭允謙)과 관비 출신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선대왕 중종(中宗)의 계비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동생 윤원형(尹元衡)에게 접근해 첩실이 되었고, 그 권세를 이용하여 매점매석, 모리배 노릇으로 많은 부를 축적했다.
그녀는 1551년(명종 6) 윤원형의 정실 김씨를 몰아내고 적처(嫡妻)가 되었다.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하였으며, 승려 보우(普雨)를 소개시켜 선종판사(禪宗判事)에 오르게 하기도 했다. 당시 권력을 탐했던 조신들이 윤원형과 정난정 부부의 자녀들과 앞 다투어 혼맥잇기에 혈안이 됐을 만큼 그녀의 위세는 엄청났다. TV드라마의 단골주제인 그녀의 횡포를 다룬 ‘옥중화’가 MBC에서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온 국민들 분노에 휩싸여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최악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나라가 온통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에도 불구하고 더욱 확산되면서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의 특검 방침에 이어 새누리당마저도 즉각적인 특검실시를 결정했다. 분초를 다투어 폭로되는 갖가지 의심들이 국민들의 격앙을 보태는 중이다. 터져 나오는 모든 의혹들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확산일로에 있다.
들려오고 전해지는 뉴스들은 차라리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싶을 만큼 험악하다. 언론과 정치권은 마치 피 맛을 본 상어 떼처럼 달려들어 최순실 모녀의 숨겨진 전횡과 이해할 수 없는 권세행동들을 앞 다투어 까발리고 있다. 흥분한 국민들은 동요 일변도다. 대통령과 깊은 인연이 있는 한 평범한 여인의 치마폭에서 이 나라 국정이 오락가락했다는 갖가지 소식에 자존심을 다친 국민들은 어찌해볼 수 없는 허탈감과 분노에 휘말리고 있다.
수상한 한 여인의 치마폭에서 나라 운명 오락가락
최순실 씨가 쓰던 태블릿PC에 남아있던 증거들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국정농단의 증거다. 발각된 박 대통령 연설문 44개 등 200여 개의 파일 증거들은 그동안 쏟아진 숱한 의혹들을 한 발짝 더 사실로 뒷받침하는 증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밝혀진 문건 중 일부 구절은 빨간 줄로 표시돼 수정한 흔적마저 있다. 일개 시민인 최순실 씨가 이런 중요한 국가 문서를 미리 받아보고 고치기까지 했다니 어이가 없다.
드레스덴 선언문에서 남북군사 접촉 등 중요한 대북정책에 대한 정보에 이르기까지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나랏일은 한도 끝도 없다. 마치 박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의 모든 업무를 아무런 권한도 없는 최순실이라는 오직 한 사람의 조언을 받아 결정한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그동안 언론은 물론 여야 정치권과의 소통을 단절한 채 지독한 불통 행태를 보인 박 대통령의 치세 이면에 한 아낙네의 농단이 있었다는 의혹들은 할 말을 잊게 만든다.
대학생 필두 들불처럼 번지는 ‘대통령 하야’ 목청
국민들은 견디기 힘든 모욕감에 휩싸여들고 있다. 대학생들을 필두로 ‘대통령 하야’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대학교수들도 나서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과거 이승만 대통령의 부정선거보다도 더 경악할 일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형적인 박 대통령의 국정행태에 대한민국이 통째로 용광로가 돼가고 있다. 쓰나미보다도, 대지진보다도 더 엄청난 이 사태를 도대체 어찌해야 옳을 것인가.
청와대의 그 많은 참모들과 집권여당 새누리당의 화려한 이력의 정치인들은 그동안 무슨 역할을 해왔는지 의문이다. 말도 되지 않는 박 대통령의 비상식적인 국정운영 시스템에 대해서 정부여당의 인사들은 왜 속수무책이었는지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권력을 감시하고 모순을 바로잡아야 할 언론들 또한 이 전대미문의 사태에 대해서 반성할 일이 없는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권위 상실한 정권이 할 수 있는 일 존재하지 않아
정치인 박근혜가 ‘최순실’이라는 교활한 한 여인의 마법인지 사술인지 모를 주문(呪文)에 걸려 스스로 포로가 된 줄도 모르고 국가 최고지도자로 올려 모신 국민들은 일시에 허탈에 빠졌다. 도대체 대한민국호가 이제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갈래를 잡기 힘들다. 인터넷에 떠도는, 입줄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온갖 추잡한 풍문들이 결국 사실로 입증되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날 지경이다. 범국민적인 이 분노를 도무지 어찌 감당할 것인지 쉽게 예감조차 되지도 않는다.
권위를 잃은 정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격한 국민들의 요구처럼 현직 대통령이 하야하는 비참한 결론은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정치권에서는 ‘거국내각’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것도 적실한 해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렇게 박 대통령의 직(職)을 간당간당 붙여놓은들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수술요법으로 암종을 도려내는 일이 유일한 살 길이라면 그렇게 갈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 새누리당 모두 국민 앞에 석고대죄 해야
무엇보다도 박 대통령의 통렬한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집권여당의 정치인들, 특히 소위 진박(眞朴)이라는 닉네임을 단 일단의 친박 무리들의 석고대죄(席藁待罪)도 필수적이다. 국민에 죄를 짓고 역사에 허물을 남기게 된 그들의 겸허한 반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패거리들의 해도 해도 너무했던 갑질 이면에 느닷없이 발견된 이 웅숭깊은 허공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들이 진정 충신이라면, 다 알고도 침묵했던 죄상들까지 낱낱이 실토하고 맹성해야 한다.
우리는 건강한 민심을 좇아야 한다. 대안도 없이, 때려 부수자는 흥분에만 머무는 일부 과격한 민심 말고, 나라의 미래를 정말로 걱정하는 인사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국민들이 공감하는 ‘거국 중립내각’을 구성해 신망 깊은 국무총리가 나라를 이끌어가게 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그것은 어쩌면 극한투쟁만 일삼는 진영논리의 구태를 넘어서 새로운 시대로 도약해야만 하는 이 나라에서 소중한 실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거국 중립내각’, 새 시대 도약 소중한 실험 될 수 있어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승려 보우는 제주도로 귀양 가 사망하고 정난정은 사림의 탄핵을 받아 본래 신분인 천인(賤人)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그녀는 남편 윤원형과 함께 황해도 강음(江陰 황해도 금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윤원형도 뒤를 이어 자결하였다. 독일로 도망친 최순실은 특정언론과 기자회견을 자청해 결백을 주장하고, ‘자살’을 암시하며 누군가를 협박하고 있다.
조선중기 왕실을 쥐락펴락한 정난정이나, 박 대통령과의 사사로운 인연을 매개로 대한민국을 떡주무르듯 해온 최순실은 한없이 미운 존재다. 그러나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그런 ‘비상식’을 허용한 통치자들의 양식과 이 나라의 권력문화가 더 큰 문제다. 분노하되 지혜로워야 한다. 어쨌든 대한민국은 굴러가야 하지 않겠는가. 국민들의 삶이, 민초들의 영혼이 이렇게 비참하게 짓밟힌 채 끝장나게 할 수는 없다. 역사에 남을 작금 ‘최순실의 난(亂)’이 한없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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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그 지독한 수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