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의 시를 읽으면 ‘사람’이 보여서 좋다. 그냥 사람이 아니다. 자기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누구나 치열하게 삶을 살고 있지만, 박노해는 자신과 이웃의 삶을 함께 짊어진 삶이라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그의 초기 시에 ‘싸움’이 자주 등장한 이유다. 저잣거리의 주먹다짐이 아니라 사람다운 삶을 일구려는 ‘사람을 세우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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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그는 자신의 직업에 ‘혁명가’라고 적는다. 한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아닌데도 혁명을 꿈꾼다. 그 혁명의 언어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시에 담아낸다. 박노해의 시를 읽다보면, 벌겋게 솟구치다가 무섭게 흘러내리는 용암을 만난다. 그의 삶 자체가 불꽃같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사는 세상’을 희구하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사람 사랑’이 없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에게는 사람을 살리는 정기가 있다.
박노해의 시에는 ‘눈물’이 있다. 그의 시에는 곳곳에 눈물이 스며있다. 간혹은 대성통곡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의 시에 담긴 눈물의 대부분은 혀와 입술을 깨물며 숨죽여 흐느끼는 눈물이다. 아니. 그 눈물을 심장에 다져 넣고 하늘을 보면서 자유를 찾아 길 떠나는 다짐이다. 그래서 그 눈물은 아픔이면서 해방이기도 했다. 그의 시 ‘하늘을 보는 소년’에는 가난과 외로움과 두려움이 들어있다.
가난과 외로움과 두려움 때문에 실패하고 패배한 날, 하늘을 보았다고 썼다. 사막과 광야와 지구 끝을 걸을 때도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았다고 했다. 그 걸음에 어찌 눈물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는 자신을 품에 안은 하늘과 만난다. 자신의 눈으로 하늘을 보는 것에서 끝났더라면 원망과 좌절이 그의 무릎을 쳤겠지만, 하늘의 눈동자로 자신을 보면서 일어섰던 것이다.
박노해의 시에는 ‘위로’가 있다. 서푼짜리 위로가 아니다. 삶 전체를 아우르고 싸매주는 위로다. 우리는 잘못 디딘 선택 때문에 삶 전체가 휘청거린 경험이 많다. 아예 굴러 떨어진 경험도 적지 않다. 사람들은 휘청거린 이에게 말한다. 판단 착오 때문이라고. 또 굴러 떨어진 사람에게 말한다. 너의 잘못 때문이라고. 어쩌다가 위로랍시고 다시 일어서라고 말하지만 공허하고 메마른 입발림이다.
박노해의 ‘괜찮아 괜찮아’라는 시에 담긴 위로의 메시지는 어깨를 마주하고 함께 길을 걸으면서 토닥이는 벗의 목소리다. 그는 ‘잘못 들어섰거나 잘못 디딘 발걸음에서 다시 길이 찾아진다’고 했다. 또 ‘굴러 떨어진 씨앗에서 꽃이 피어난다’고도 했다. 실패한 벗들에게는 ‘쓰러지고 깨어져야 진짜 네가 살아난다’고 말했다. 아픔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라며 손을 내민다.
박노해의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는 진짜 나의 하늘을 보게 했다.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물음표로 남아있던 일들에 대한 답도 어렴풋이 찾아낼 수 있게 했다. 그의 시집 두 번째에 실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는 시가 많은 영감을 주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나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깊은 침묵을 좋아한다. 나는 빛나는 승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의미 있는 실패를 좋아한다. ...(중략)... 나는 소소한 일상을 좋아한다. 그래서 거대한 악과 싸워나간다. 나는 밝은 햇살을 좋아한다. 그래서 어둠에 잠긴 사유를 좋아한다. 나는 혁명, 혁명을 좋아한다. 그래서 성찰과 성실을 좋아한다. 나는 용기 있게 나서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떨림과 삼가함을 좋아한다.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를 바쳐 너를 사랑하기를 좋아한다.’
손정임 기자 sjo54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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