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은 미로와도 같다. 어느 날 화창하여 봄인듯하다가 돌연 추위가 엄습하여 다시 겨울인듯함을 반복한 뒤에야 화창한 봄이 오니, 참으로 봄이 오는 길목은 오묘하다. 그러니 어찌 꽃 한 송이 피고 나비 한 마리 날고 벌 한 마리 난다고 봄이라 하겠는가.
반면 어느 날 여름이 오고 어느 날 비 내리면 가을이며 어느 날 불현듯 겨울이 왔음을 느끼니, 봄 오는 길목과 비교하면 참으로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변화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의 변화가 어찌 이치가 없겠는가. 지구의 운동과 음양의 이치에 따라 겨울에서 봄으로 진행하는 과정이 그러할 뿐이다.
천지자연의 이치가 그러할진대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가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법과 제도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간이 만든 것이니, 자연의 변화와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옛 성현들이 때(時)를 아는 것이, 귀중(貴重)하다 하신 것이다. 때를 모르는 자 철부지니 어찌 철부지가 정치할 것이며 시대의 변혁을 이끌겠는가.
코로나19라는 재난에 대응한 K방역이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와 비교하여 월등한 성과를 올렸다고 자랑하고 있다. K방역이 성공한 요인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획일적 통제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통제에 익숙한 사회라는 점과 다른 하나는 어느 시대든 국민을 살게 하는 정책은 순응한다는 점이다.
행정명령에 의한 획일적 통제는 지난 역사에서 너무나 익숙한 것이니 여기서 논할 필요조차 없다. 다만 이 획일적 통제정책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방역의 성공은 획일적 통제였는데 코로나 이후의 민생에 대한 대책은 획일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화장실 갈 때와 올 때 다르다는 속담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권력자의 이중적 잣대가 명백한 기준 없이 시행될 때 민심은 돌아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산아제한정책의 시행은 직접수혜방식이었다. 정관수술을 한 자는 예비군 교육을 면제해주는 등등이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출산육성정책은 간접집행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국민을 살게 하는 정책은 그것이 폭력이든 억압이든 수고롭든 상관없이 순응한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이는 양극화ㆍ저출산ㆍ수도권 1극의 적폐를 해결하는 정책 방향을 제시해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을 살게 하는 정책인가.
율곡 이이는 당시의 적폐를 국망(國亡)이 근심할만한(所可憂) 것이라 했고 초려 이유태는 위망(危亡)에 이르는 화급을 다투는 시급한 상황이라 했다. 해결책은 국정전반의 적폐를 개혁하는 것이며 핵심은 국민을 살게 하는 것이었다. 오늘의 적폐가 어찌 이보다 안심할만한 상황이라고 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법과 제도에 얽매여 일시적 부분적 땜질로 일관함은 이 시대 진정한 지도자가 없음인가.
K방역의 성공과 산아제한정책의 성공은 획일적 통제와 직접수혜방식이었다. 이는 당대 국민의 능동적 적극적 참여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교훈적 사례이다. 진정한 개혁과 혁명의 성공은 국민의 내재적 자발성을 견인함에 달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 시대의 지도자는 민심을 얻는 자이니, 기존의 법과 행정패러다임을 혁신하는 자라야 한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미증유의 가공할 속도와 변혁의 폭과 깊이에 맞는 신세계(new world)에 적합한 지방분권과 공동체, 국민 개개인의 자율과 창의를 촉발시키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는 기존의 법과 제도는 물론 지금까지의 정당정치의 탈을 벗고 예의염치(禮義廉恥)와 인륜도덕(人倫道德)이 주도하는 인간다운 사회, 여민동락의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마을공동체의 복원은 시대적 사명이다. 과거 권력자와 부호가의 특징이 으리으리한 저택과 높은 담장이라면, 이제는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마을, 지역, 국가, 지구촌의 지도자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국민과의 격리의 상징이었던 저택과 담장이 이웃과 국민의 사랑을 받는 성공한 자로, 혜택을 주는 자로, 국민과 함께 하는 자로 새로이 탄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의 축적과 권력이 어찌 나쁜 것인가. 사랑과 존경을 받아야 마땅하다. 지금처럼 높은 담장을 치고 구두쇠 스쿠르지로 삶을 마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우리는 이미 절대빈곤을 벗어났고, 모든 사람이 선한 본성을 지녔으며 각기 타고난 재능이 있음을 알고 있다. 4차산업시대는 이러한 인간이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시대라야 할 것이다. 신분과 권력의 세습과 싸웠던 시대, 자본의 세습과 고착화가 부른 시대적 적폐, 이제 우리는 신세계를 그려야 하는 혁명적 전환의 시대에 와 있다. 지난날 법과 제도, 중앙집권적 행정패러다임에 의한 적폐(양극화ㆍ저출산ㆍ수도권1극)의 본질이 인간다운 삶을 억압하고 차별했다는 사실에 있음을 깨우친 자가 신세계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고주환 논설위원 kjmong14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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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그 지독한 수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