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선비 초려 이유태(1607~1684)는 ‘기해봉사’라는 개혁안을 올리며 그 말미에 “삼가 죽기를 무릅쓴다.”고 하였다. 이는 개혁의 절박함을 말한 것이다. 그것도 부분적 개혁이 아닌 국정 전반의 대대적인 혁신이 없이는 조선이 망하고 말 것이라는 시대 인식에 기인 한 것이다. 누가 초려의 이 절절함을 이해할 것인가? 공리주의, 이권쟁탈, 권력지상주의의 풍토로 전락한 조선의 광풍 속에서 “기해봉사”라는 개혁안 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조선의 선비 이유태의 개혁론이 본래 유학이란 학문의 본체임을 그 누가 알겠는가?
송 원풍 8년(1085)에 하남에 사는 정호 백순이 돌아가시자, 노공 문언박이 그의 묘비에 명도(明道)선생이라 쓰니 그의 아우 정이 정숙이 다음과 같이 서문을 지었다. ‘주공이 돌아가심에 성인의 도가 행해지지 않았고 맹자가 돌아가심에 성인의 학문이 전해지지 않으니, 도가 행해지지 않은지라 100대에 훌륭한 정치가 없고 학문이 전해지지 않은지라 천년 동안 진짜 선비가 없었으니 훌륭한 정치가 없더라도 선비가 오히려 훌륭한 정치 방법을 밝혀 사람을 가르쳐서 후대에 전할 수 있겠지만 진짜 선비가 없으면 천하가 암흑에 빠져 갈 곳을 몰라 욕망에 빠져 천리(天理)가 없어질 것이다. 선생께서 1,400년 뒤에 태어나 남은 경서에서 전해지지 않은 학문을 터득하여 유학(斯學)의 흥기를 자기 책임으로 삼아 이단을 분변하고 사설을 물리쳐 성인의 도를 다시 세상에 찬란히 빛나게 하셨으니, 대개 맹자 후로 한 분일 뿐이다. 그러나 학자가 도에 있어서 향할 바를 모르면 누가 이 사람의 공인 줄 알며 이른 경지를 모르면 누가 이 이름(明道)이 실정에 맞는 줄을 알겠는가?’
유학의 전성시대를 살았던 이천 선생도 “학자가 도에 있어서 향할 바를 모르면 누가 이 사람의 공인 줄 알며 이른 경지를 모르면 누가 이 이름(明道)이 실정에 맞는 줄을 알겠는가?”라고 개탄하였는데,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던 조선 중기, 하물며 북벌조차 잿밥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던 그 역사 속에서 누가 초려의 개혁안이 유학의 실천 대도임을 알겠는가?
초려 이유태는 조선의 선비이다. 어려서부터 배우고 도를 깨우쳐 실천함을 목표로 한 조선의 대유학자이다. 시대를 만나고 만나지 못함이 선비에게 무엇이랴. 만나면 만난 곳에서 실천하고 만나지 못하면 만나지 못한 데서 실천하면 그뿐이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인가? 성리학의 나라를 꿈꾼 삼봉 정도전의 숙청, 어떠한 사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세조의 왕권찬탈, 정암 조광조의 개혁실패와 사화, 율곡의 개혁론 흐지부지, 초려의 국정 전반의 개혁론 역시 흐지부지, 이후 조선은 補空塞鏬(보공색하)에 불과했던 땜질식 처방으로 급기야 세도정치로 이어져 민생은 파탄 나고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조선의 역사 어디에서 성리학의 나라라는 증거를 찾을 수 있을까? 조선은 성리학이라는 문패를 내건 시정잡배의 권력 쟁탈에 불과했다고 하겠다.
임진·병자의 참혹한 변란에도 반성할 줄 모르는 후안무치하고 파렴치하며 이권밖에 모르는 시정잡배와 같은 기득권자들이 성리학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초려의 “기축논사소”는 바로 이러한 당시의 상황에서 개혁론자와 기득권층이 부딪치며 일어난 사건이다. 김자점 일파의 청나라 밀고는 사대라는 파렴치한 행위로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대국에 빌붙는 것이니, 그 연원은 멀리 친당에 있으며 지금도 버리지 못하는 고질적인 습성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초려가 제시한 해결책은 “선내수 후북벌”이었으니, 민생을 구제함이 우선이고 북벌은 다음이니, 요약하면 부국강병이다. 참으로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은 실천적 대안이다. 내수가 없는 북벌은 하나의 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내수의 핵심은 사문화된 조종의 헌장을 실천하는 것이며 연산조의 잘못된 법규를 바로잡는 것이다. 결국, 실천에 달린 셈이다. 특히 부국의 기본토대는 향촌의 안정과 민초의 교육에 달렸기에 기해봉사의 별책으로 제시한 초려의 향약은 국가적 차원에서 설계한 것으로, 요약하면 민생의 구제와 교육이다.
초려의 개혁론은 사상의 변혁을 추구한 혁명이 아니라 지금까지 실천하지 못한 조종헌장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헌법을 실천하자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정암, 율곡을 거치면서 더욱 도탄에 빠진 민생의 구제와 기득권층의 이권쟁탈로 허물어진 기강을 바로잡자는 실천론이다.
이는 유학이라는 문패만 내건 기득권층의 탐욕과 횡포에 신음하는 백성을 구제하여 명실이 상부한 유교국가를 수립하자는 것이다. 초려는 이를 위하여 목숨을 건 것이니, 조선 선비의 표준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조선 중기의 현실과 대한민국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국제관계와 국내 현실을 보면 대동소이하다. 국제관계가 비슷하며 정치와 행정의 탐욕과 횡포, 그들만의 리그 또한 같다. 아니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200여년의 시간 속에서 변한 것이라면, 우리는 불과 70년만에 양극화와 저출산이라는 전대미문의 재앙을 초래하였으니 과연 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과연 이런 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할 수 있는가.
인류 역사가 멸하지 않는 한 인간의 선한 본성은 변하지 않아 촛불혁명이라는 유례가 없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으니 과연 이 나라의 백성은 얼마나 훌륭하다 하겠는가?
왕조라는 전제 시대, 신분제라는 질곡의 시대에도 초려 이유태는 개혁의 절박함을 ‘삼가 목숨을 건다.’ 하였는데, 자유민주주의 시대, 현명한 국민이 촛불이라는 민의를 표출하여 ‘개혁만이 이 시대의 급무’라 하여 개혁의 정당성을 뒷받침함에도 이 시대의 정치ㆍ행정ㆍ사법의 지도자는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에 집착하여 기득권 유지에 시끄럽기만하다.
진정 초려 이유태처럼 국정 전반의 개혁에 목숨을 거는 지도자는 이 시대에 없는 것인가. 누가 양극화ㆍ저출산이라는 초유의 재앙적 문제를 위해 목숨을 걸 것인가.
초려가 당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준을 조종헌장의 준수에서 찾았다면 오늘의 우리 사회문제 또한 대한민국 헌법의 준수에서 찾을 수 있으니,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제 영역의 균등한 기회와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이루지 못한 헌법기관의 개혁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촛불의 민의는 인간본성의 양심의 발로이다. 그 기준은 인간다움의 실현이니, 나의 자식이 행복하길 바란다면 남의 자식도 행복해야 할 것이며 나의 자식이 많은 월급을 받길 원한다면 남의 자식도 많은 월급 받길 원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깨달음과 실현이 바로 이 시대 헌법기관이 해야 할 의무이며 정치ㆍ행정의 지도자와 고위관료에게 촛불의 민의가 부여한 시대적 사명이다.
역사는 언제나 근심과 즐거움을 짝한다. 근심을 해결하면 즐거움이 오고 즐거움에 빠지면 다시 근심에 빠지는 것이 인간사이다. 지도자는 국민에 앞서 근심하고 국민이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하니 국민이 그 지도자의 덕과 희생을 사모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2021년 코로나19보다 더한 재앙적 문제를 목숨을 걸고 해결할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한다. 국민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처럼 괴로워하며 국민이 즐거워함을 자기의 즐거움보다 더 즐거워하는 위대한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한다.
이미 촛불의 민의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국민은 그러한 지도자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으니, 시대로 말하면 지금보다 더 좋은 시기는 없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이다. 국민이 좋아하는 것을 행하기만 하면 되니,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어려움이라면 조선 왕조를 멸망으로 이끌었던 기득권과 탐욕을 버리고 국민과 함께함이 아니겠는가?
고주환 논설위원 kjmong14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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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그 지독한 수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