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 시절에도 재상을 얻느냐가 제왕의 가장 큰 과제였으니, 요임금과 같은 성왕도 순(요임금 다음 임금)이란 인물을 얻으려 필사의 노력을 다하셨다. 순이란 인물을 얻고서 자기의 아들과 딸 9남 2녀를 모두 그에게 주셨으니, 이것이 제왕 요가 순이란 재상에 대한 예우이다.
유비도 공명이란 인물을 얻기 위해서 삼고초려(三顧草廬)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제왕의 근심은 오직 재상에 적합한 인물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에 있을 뿐이다.
그에 합당한 인물을 얻으면 그 정치가 행해지는 것이고 그 인물을 얻지 못하면 그 정치는 물 건너가는 것이다.
인사가 만사이다. 사안이 그러하니 어찌 민주주의라고 그렇지 않을 것이며 대통령제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인간이 다르지 않으니 정치가 다르지 않으며 정치가 다르지 않으니 인사가 만사라는 진리는 이 우주가 다하도록 결단코 변하지 않는 법칙이라 하겠다.
재상이란 어떤 자리인가.
중국 한나라 문제가 국가 일을 자세히 익히고자 조회에서 우승상에게 “천하가 한 해에 재판 판결이 얼마인가.” 묻자, “모릅니다.” 대답하고, “한 해에 돈과 곡식의 출납이 얼마인가.” 묻자, “모릅니다.” 대답하고, 우승상은 땀이 나서 등골을 적셨다. 이에 문제가 좌승상에게 묻자, “주관자가 있으니, 폐하께서는 재판 판결을 물으시려면 정위(廷尉)에게 하시고 돈과 곡식의 출납을 물으시려면 치속내사(治粟內史)에게 하십시오.” 하자, 임금이 “그대가 주관하는 것은 무슨 일인가.” 물었다. “재상은 위로는 천자를 보좌하여 음양을 다스리고 사계절을 순조롭게 하고 아래로는 만물의 마땅함을 이루게 하는 것이며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와 제후를 진무하고 안으로는 백성이 친히 붙따르게(親附) 하여 경대부로 하여금 각기 맡은바 직분을 다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재상이 할 일은 네 가지이니 첫째 천자를 보좌하여 음양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요. 둘째 만물이 각기 마땅함을 이루게 하는 것이요. 셋째는 외교와 국방이요. 넷째는 백성의 뜻을 헤아려 행정의 직분을 다하게 하는 것이다.
재상의 직분이 그러하니 어찌 자잘한 통계수치에 연연할까. 담당 관리나 할 일이다. 백성이 하는 것을 보면 행정의 가부는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이다.
현대사 어떤 총리가 그러할까. 그런 총리가 없었다면 이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잘못이다. 대통령의 근심과 걱정은 단 한 가지 그런 총리를 발탁하여 모든 전권을 부여하고 대통령과 근심 걱정은 물론 임기까지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 모든 잘못을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돌릴까. 그 직에 나아가 그 직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순순히 물러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에 단 한 명도 자발적으로 물러난 총리가 없었으니, 재상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자임한 자가 한 명도 없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소임을 다하겠다 자임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당대의 현안에 대해서는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니, 우리 현대사는 그조차도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오늘날 같은 기형적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오늘의 총리가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양극화와 저출산이다. 두 가지 사안이 모두 망국에 이르는 중병임에도 불구하고 총리 된 자가 이를 자임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 것인가. 또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고위관료는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혹자는 법에 따라 공정하게 집행하고 있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법이 잘못된 것이니, 헌법 어디에도 양극화 저출산을 초래해도 좋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다운 삶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라고 하였으니,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 또한 총리를 비롯한 고위공직자의 몫이며 책임이다.
법이란 때에 알맞게 고쳐야 하니, 율곡 선생께서는 성왕의 법도 폐단이 생기면 마땅히 고쳐야 한다고 하셨다. 오늘의 양극화와 저출산의 주범은 바로 잘못된 입법ㆍ사법ㆍ행정에 연유한 것이니, 오늘 고치지 않으면 하루 더 고통만 가중될 뿐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단편적인 땜질식 처방과 정책이 오늘의 거대한 재앙적 문제를 초래한 것이니 근본적인 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 한 해결책이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임은 이제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라는 명분과 법은 있지만, 그 시행은 오히려 중앙집권과 관료제 중심의 통제만 더 했으니, 실제 지방자치단체장이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특별시장과 각 시도지사가 과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안타깝고 가련한 지방자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자치가 이러할진대 주민자치는 어떠하겠는가. 말만 무성할 뿐이다. 각 부처의 상향식 사업도 말만 좋지 실상은 없다. 전국이 요란하다. 그 속에서 국민의 병은 깊어만 가고 있다.
총리를 비롯한 고위관료가 이를 모를까. 어찌 모를까. 어쩌면 알고 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온갖 잔머리를 다 굴리는지 모른다. 한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한 번 기득권을 얻으면 절대로 이를 놓지 않으려는 아주 못된 고질병이 있다. 여민동락이라는 대의는 저버리고.
그러한 예가 21대 국회에서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으니, 시군구 기초의원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변형되고 있으며 국회의원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역시 변형되고 있으니 일일이 거론해서 무엇하랴.
재상은 무엇을 하는 자리인가. 고위관료는 무엇을 하는 자리인가. 그들의 역할과 시대적 사명은 무엇인가. 공자께서 인(仁)을 행함에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늘 양극화와 저출산이라는 역사적 재앙을 해결함은 5천만 국민에게 인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누구에게 양보하랴. 21대 국회의원과 총리와 고위공직자는 있는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행정수도완성과 혁신도시와 KBS충청방송총국의 설립 등 법에 정해지고 실행만 하면 되는 것조차 미온적으로 머뭇거리다가 머릿속으로 이해타산을 따진다면 실로 이 시대의 국민으로부터 거대한 지탄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어느 시대고 국민은 어리석지 않으므로.
고주환 논설위원 kjmong14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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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그 지독한 수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