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의 청소년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재앙이다. 우리의 정치와 행정은 통제를 위해 존재했다. 국민의 삶의 질과 자아실현을 위해 봉사해야 할 정치와 행정이 도리어 규제하고 통제하며 억압하기 위해서 존재했다. 조선 시대가 그랬고, 일제 강점기가 그랬으며, 지난 70년 또한 그러했다.
교육 또한 그러했으니, 학교는 청소년을 틀에 가두고 일정 기간 사회와 분리하여 통제하는 일종의 청소년 교도소 역할을 담당했다. 틀에 박힌 교육과정과 교복과 두발 규제가 그러했으며 자유화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자율화 역시 외면에 치중된 선심성(?) 정책의 하나에 불과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당시 학생들은 좋아했지만, 근본인 민주시민교육과 자아실현보다는 입시위주의 교육과정운영과 그에 따른 서열화라는 틀 안에서 외면적 자율과 창의는 실로 그 획일적 서열화라는 거대한 장막을 친 학교 건물에 붙이는 하나의 슬로건과 그 껍데기를 장식하는 하나의 도구로 작동하였다.
역사를 감계(鑑戒) 삼아라. 역사란 현재와의 대화이다. 역사는 도전과 응전이다. 도전이란 주어진 현실의 역경이며 응전이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다.
국가주의 틀 안에서 한국의 교육제도는 외형적으로 거대한 성과를 이루었다. 거기에 긍정적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교육ㆍ학문ㆍ문화ㆍ예술을 하나의 제도적 틀에 묶고 이를 획일적으로 통제한다는 발상 자체가 관리를 스승으로 삼으라며(以吏爲師) 서적을 불 지르고 선비를 생매장(분서갱유)한 진시황의 폭군정책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政者正也). 대한민국 현대사는 국정 전반에 걸쳐서 단 한 분야도 정치의 본질적 기능인 바로잡는 기능을 수행한 적이 없었던 비관적인 역사였다. 7080세대에 그렇게 외쳤던 자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관리가 되었지만 이러한 바로잡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들이 청년 시절에 외쳤던 “독재정권 타도”는 하나의 침묵하는 역사의 뒤안길을 서성이는 문자로 남아 있을 뿐이다. 욕하며 닮아간다는 우리 속담은 오늘을 비유하는데 아주 적합하다. 권한을 잡고도 못하고 있으니 과연 이들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작금 범정부적으로 추진하는 코로나는 단지 일시적 재앙일 뿐이다. 그러나 출산하지 않는 청년세대의 침묵적 항거는 오천년 초유의 재앙이며 이는 대한민국을 파멸로 이끌 것이다. 미래 세대가 없는 대한민국이 어디에 존재할 것인가? 작금의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또 이를 방치한 정치와 행정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일제를 거쳐 현대사에 누적된 적폐를 점진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가. 역사적으로 점진적 개혁을 성공시킨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 더구나 우리 오천년 역사는 단 한 번도 점진적 개혁을 성공한 사례가 없다. 근본적인 사고의 발상이 없다면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절망적 현상을 타개할 수 없다.
특히 자유경쟁과 극단적 이기주의 풍토 속에 가장 취약한 계층은 영유아와 청소년, 노인이다. 이들은 보호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투자 대비 효율성이 없다는 관점에서 정치적으로 영유아와 청소년은 투표권이 없다는 관점에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비록 정책이 있다 하더라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와 부처별 분산으로 효율성이 없을뿐더러 정책의 시행이 수혜자에 대한 직접 집행이 아닌 사업자를 매개로 하여 행정비용만 소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의 과세 및 세금 징수방식을 포함한 모든 것이 개인에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에 집행만 유일하게 사업자를 매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부조리와 비리의 온상을 행정집행방식이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개혁이 없는 한 지금까지 국민을 통제했던 관료제적 틀을 벗어날 수 없다.
그 한 사례가 청소년활동진흥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시ㆍ도지사 및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읍ㆍ면ㆍ동에 청소년문화의 집을 1개소 이상 설치ㆍ운영하여야 한다(제11조 제3항)는 규정과 설치ㆍ운영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예산의 범위에서 보조할 수 있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충청남도 207개 읍면동에 23개(청소년수련관11, 청소년문화의집12)뿐이다. 반면 노인여가시설은 5816개(노인복지관16, 경로당5733, 노인교실67)이다.
이러한 현상이 전통의 미풍양속인 경로사상을 반영한 것이라면 참으로 아름답다고 할 수 있으나 기실 단순히 표를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지도자와 관리가 진정 경로의식이 그렇게 투철했다면 오늘의 소외되고 비참한 노인은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법적으로 읍면동에 청소년문화의집을 설치ㆍ운영하여야 한다고 규정했음에도 하지 않는 것은 청소년이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다. 독일의 청소년여가시설은 약 16,000개로 우리나라 읍면동당 약 5개 정도이다. 이는 단적으로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대표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사회의 정치지도자는 선거철만 되면 ‘어르신, 어르신’ 그렇게 공손하고 훌륭한 인간이며 선거가 끝나면 경로당 개소식 및 각종 행사를 찾아다니며 또 ‘어르신, 어르신’ 하는 그렇게 공손하고 훌륭한 지도자만 있다. 어찌 착하지 않은가. 진정 동방예의지국의 지도자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독사 등 비참한 노인의 삶은 개선되지 않고 있으니, 이 시대의 지도자는 개인적으로 착하기만 하고 정치는 할 줄 모른다고 하겠다.
한갓 착하기만 해서는 정치를 못한다(徒善不能政)는 맹자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사회가 혼란할수록 종교와 봉사활동은 치성하며 사회가 안정될수록 종교와 봉사활동은 사라진다. 누가 누구를 위한 봉사인가? 봉사활동이 존재하는 한 그 사회는 자아실현에 실패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봉사활동을 하는 힘으로 왜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으며 그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도덕적이며 이성적이며 스스로 책임지는 자립적 존재이다. 이들이 각기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이다. 경로당 찾아다니며 ‘어르신, 어르신’ 하며 마음에도 없는 광대 짓거리는 이제 그만하고 노인이 어떻게 하면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지 물어보고 그에 알맞은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시대에 지도자로서 관리로서 해야 할 본연의 사명인 것이다.
지도자로서 고위관료로서 마땅히 해야 할 청소년문화의집 설치ㆍ운영을 방치하고 표심만 찾아 구걸하는 사이비(似而非:비슷한듯하나 그릇됨) 행각에 대하여 주민들은 무관심하고 무표정할 뿐이다. 그러는 사이에 오늘의 청소년은 청소년으로서의 진취적 기상과 열정을 포기한 채 제도라는 거대한 틀에 닫혀 소외되고 고독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단지 성적만으로 전 국민을 줄 세우는 오늘의 교육풍토에서 이들에게 과연 무슨 희망과 열정이 있겠는가? 이들을 보노라면 가슴이 시리고 아프다.
청소년의 꿈과 희망과 열정이 바로 대한민국의 꿈이며 희망이며 열정이다. 오늘의 정치지도자와 관리는 최우선 순위 정책을 청소년과 영유아에 두어야 할 것이며 그 시행방식도 각 읍면동의 청소년문화의집운영위원회(가칭)에 일괄 위탁하여 자율적인 예산의 수립과 집행 권한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주민자치이며 풀뿌리민주주의의 실현인 것이다.
전환의 시기, 혁명의 시기에 그 과업을 완수하지 못한 국가와 민족은 사라질 뿐이다. 정치와 행정이 지금 일제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행한 통제 일변도의 방식으로는 진정한 민주주의도 21세기 대한민국의 도약도 기대할 수 없다. 각 읍면동 주민의 삶의 질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예산 수립과 집행의 권한을 주민공동체에 부여하는 내용을 헌법에 명기하고 관련 법과 조례를 제ㆍ개정해야 오늘의 저출산ㆍ고령화의 문제를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사실 개혁보다 쉬운 것은 없다. 개혁과 혁명은 인간이 존엄하다는 전제하에 그 근본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100미터 출발점에 같이 서는 것과 다름이 없다. 풀뿌리민주주의 역시 근본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어떤 권력자가 지시해서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스스로 판단하고 중론을 모아 집행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완성이며 공화(共和)의 실현인 것이다.
헌법에 명시한 기관의 장과 직원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는 국민의 봉사자이다. 이들이 부여받은 권한이 국민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방식이 되었다면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그 지위와 권한에 맞는 자신의 역할을 깨우치길 바란다. 근본을 변혁하지 않고 그때그때 법조문만 추가하며 입으로만 저출산이니 양극화니 청소년이니 입시제도 등등을 운운한다면 21세기 대한민국의 주민들은 이를 방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오늘의 청소년과 미래 대한민국의 번영과 행복을 꿈꾸는 모든 주민은 앞장서서 이를 외치고 당당히 요구할 시대적 사명이 자신의 본분임을 깨닫길 바란다.
고주환 논설위원 kjmong14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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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그 지독한 수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