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은 얻고 잃음이 정치의 표준이며 역사의 표준이며 인간의 표준이며 칼의 표준이다. 우리 역사에는 그 표준이 없었다. 이건창은 고령부원군 신죽주의 탄식을 통해 그 표준을 노래하며 다시는 나 같은 사람이 있지 말라 하였다.
맹자께서는 “걸왕과 주왕이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음이니, 그 백성을 잃음은 그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천하를 얻음이 도가 있으니, 그 백성을 얻으면 이에 천하를 얻으리라. 그 백성을 얻음이 도가 있으니, 그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을 얻으리라. 그의 마음을 얻음이 도가 있으니, 하고자 하는 것을 함께 취하고 싫어하는 것을 베풀지 말아야 한다.”하셨다.
우리 역사에서 ‘난(亂)’이라 명명했던 모든 것이 바로 억눌려 울던 백성의 칼이 일어나 추던 춤이었다. 그 춤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면 일제의 침략 앞에 처참히 부서지는 아픔도 없었으리라.
고령탄을 노래하며 인간 본연의 칼춤을 춘 이건창의 문사조차 소위 광복이라 명명한 이후에도 대한민국 어느 교육과정에서도 가르치지 않았으니, 과연 대한민국의 지식인과 지도층은 어떠한 정체성을 지녔을까? 사건의 시비도 인물의 현부도 판단할 표준이 없는 나라에서 위정자와 지도자와 지식인은 무엇을 했나. 어찌 오늘의 양극화와 저출산과 국토의 기형적 발전과 청소년의 절망이 하루아침에 생겼겠는가.
조선 500년에 최연소 과거급제자(13세)인 이건창은 당시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가슴에 저미는 칼춤을 그대로 추었다. 그 후 많은 칼춤이 있었다. 집단적인 칼춤도 있었고, 장터에서도 광장에서도 숨어서도 칼춤을 추었다. 다시는 신숙주와 같이 탄식하는 사람이 있지 말라 한 고령탄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울며 숨죽이다가 폭발하는 칼의 춤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역사는 인간의 역사이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표준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륜도덕이 첫 번째요, 다음이 의식주이다. 그러나 그 실천은 의식주가 먼저요, 인륜도덕이 그 다음이다. 그래서 백성의 하늘은 식(衣食住)이라 하는 것이다. 위정자와 지식인과 지도자는 인륜도덕이 첫째요, 그들의 사명이 백성을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하는데 있음은 자명한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 일제, 현대사에도 우리의 위정자와 지도자와 지식인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이건창의 고령탄은 울며 숨죽이지 말고 일어나 칼춤을 추라고 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을 외치라고 한다.
人生會止此 人生이 마침내 이 지경에 그치니
歲月不我與 세월도 나와 더는 함께 못한다 하네.
富貴不相留 부귀도 나를 붙잡지 못하고
五十九年去 59년 인생 떠나가네.
去去何所見 떠나가 어디서 누구를 만날까.
何以見先王 무슨 면목으로 선왕을 뵐까?
先王在我上 선왕께선 내 위에 계시고
謹甫在我傍 성삼문은 내 곁에 있으며
仁叟與太初 박팽년과 유성원
伯高與仲章 이개와 하위지 어찌 만날까?
人生會止此 인생이 마침내 이 지경에 그치니
此事難又難 이 일 어렵고 또 어렵다오.
顯世爲臣者 세상 신하 된 자여
勿復有此嘆 다시는 이런 한탄하는 일을 하지 말지어다. (終)
고주환 논설위원 kjmong14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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